의료 공백 속 희소질환 환자의 눈물: "내 아이 영영 검사 못하게 되나"
혈관계 희소질환을 가진 아들의 엄마인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아들 병원 검사 일정이 계속 연기되면서 항생제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 희귀한 유전자 변이 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 혈관과 림프관이 기형적으로 증식해 과성장하는 질환입니다.
10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매우 희귀한 질환입니다.
서이슬(40)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이 질환으로 10여 년 투병 중인 초등학생 아들이 있습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시작된 전공의 파업 이후, 아들에게 필요한 투약 검사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의료 공백의 현실: "아들은 항생제로 버티고 있다"
서 대표는 희소질환 환자를 대표해 지난 13일 국회 앞에 섰습니다.
그는 "전공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아이는 영영 검사를 못하게 되나"라며 "전면 휴진을 당장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본보는 서 대표를 따로 만나 의료 공백에 따른 희소질환 환자들의 피해 상황을 들었습니다.
전공의 파업 이후 4개월: 의료 공백의 실태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다리가 왼쪽에 비해 두 배 이상 큽니다.
척추측만증, 다리 출혈, 급성감염(봉와직염) 등의 치료를 수시로 받아야 합니다.
증세 호전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중인 약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투약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선 서울아산병원 소속 전공의 2명만이 이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파업하면서 4월에 잡혔던 검사일이 5월로, 다시 8월로 계속 연기되고 있습니다.
투약 검사를 받지 못하면: 생명은 위협하지 않지만...
당장 생명이 위독해지지는 않지만,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희소질환 환자들이 더 소외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치료가 더 급한 사람들이 많으니 만성적인 증상은 피해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어차피 못 고치는 병'이니 뒷전으로 밀립니다.
하지만 희소질환 환자들은 제때 검사나 처치를 받지 못해서 치료 효과가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어떤 치명적인 위험이 초래될지 모릅니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 불안에 떠는 환자들
주기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병변 변화를 추적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데 자신의 몸 상태를 알 수 없는 게 대표적입니다.
'악성종양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듣고도 추가 검사를 받지 못해 불안에 떠는 환자도 있습니다.
내 아들도 유전자 검사뿐만 아니라 다리 길이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정형외과에서 성장판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치료 타이밍을 놓칠 수 있어 걱정스럽습니다.
모두 전공의들의 업무입니다.
의료계의 요구와 환자의 입장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 대표는 "정부가 이미 의대 증원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에 전면 철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아들의 투약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는 전공의가 국내에서 단 2명뿐입니다.
의사가 부족하니 환자들도 진료를 받기 어렵지만, 의사들도 업무가 과중됩니다.
멀리 보면 의사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당장의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을 고집해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응 방안: 환자 피해 최소화
정부가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의사 수를 선 긋듯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 방침대로 의대 증원을 해도 과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대응은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입니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입법과 진료지원 인력 합법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전면 휴진 등 의료인 집단행동 재발 방지책도 내놔야 합니다.
의료계 집단 휴진 강행 시 환자의 대응
주변에서는 '어디 가서 점거 농성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서 대표는 고소·고발 등 법적조치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들이 18일 휴진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희소질환 특성상 장기간 진료와 투약이 필요합니다.
아들을 생각하면 해외 원정 치료라도 받고 싶지만, 당장 생업을 접고 이민을 갈 수 있는 가정이 몇이나 되겠냐고 서 대표는 호소합니다.
환자들이 사지로 몰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